이 책을 리뷰를 할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다. 그 이유는 양희송 작가의 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책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역시도 제외 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예전에 있는 포스팅을 옮기는 의미에서, 글을 쓰기 때문에, 그냥 그래도 올리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작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기도 하고, 이 책 또한 나에게도 약간의 논란의 여지가 있기도 하다. 책 표지는 이렇게 되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분이 어떤 분인지 잘 알지 못한다. 예전에 청어람 아카데미를 운영했으나,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모든 직에서 면직되었다가 다시 복귀한다는 이야기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꽤 오래전에 사두었으나 책장에 잘 넣어놨었고, 다른책을 보다가 우연히 손에 집혀 읽게 된 책이었다.
일단 “가나안 성도”의 정의는 가나안을 뒤집으면 “안나가”가 된다. 즉 교회를 안나가는 성도를 말한다. 교회를 안나가는데 성도가 된다는게 말이 되는가? 다시 말해서, 예전에는 교회를 나갔으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지금은 교회를 나가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은 교회 밖 그리스도인 이라고 말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는 가나안 교인들의 다양한 원인, 형태, 이유를 적고 있고, 이러한 성도들이 거의 100만명에 육박한다는 이야기를 적고 있다.
아마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가나안 성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때는 온라인으로밖에 예배를 드릴 수 밖에 없었고, 이제는 이불밖은 위험하다며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사람들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일단 책 내용을 보면 몇가지 논쟁거리가 있긴한데 그 첫번째는 가나안 교인의 양산은 목회자의 잘못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책을 읽다보면, 가나안 교인을 양성한 이유를 목회자의 전적 잘못으로몰아간다. 그러나 가나안 교인이 된 100프로의 이유가 목회자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물론 필자 역시 목회자이기 때문에 이런거에 민감할 수 있지만, 반대로 말해 올바른 목회자들에 대해서는 책 내에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필자가 느끼기에, 물을 흐리는 목회자들이 10%도 안되고 나머지 90% 이상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자신의 목회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고 사역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10%만 사회에 부각되어서 마치 목회자들이 모든 것을 잘못했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고 있는것이 아닐까 싶다.
지상 교회는 완전하지 않다. 지상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이기 때문에 늘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와 목회자, 교회 역시도 온전해지기 위해 노력해가고 있다. 이들 모두 죄의 유혹을 받고 있고, 때로는 죄에 빠지기도 하지만, 성화되어가는 한 과정속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이러한 점들을 굉장히 안타까워 하면서, 목회자 본인이 올바로 서기위 해 수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이런 점들이 책 내에서 드러나지 않아서 아쉬움이 크다.
두번째 논쟁거리는 가나안 교인들에 대해 조사했지만 한정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물론 인터뷰를 했다는 자체만으로 가나안 교인과, 인터뷰하는 사람들 모두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터뷰를 보면 큰 교회를 다니다가 가나안 교인이 된 사람들의 인터뷰가 많이 실려 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이미 인지하고 있지만, 큰 교회는 교회의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 고 있을 것이다. 물론 큰 교회가 존재해야 하긴 하지만, 너나나나 모두 큰 교회를 지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큰 교회는 나름대로의 자신의 브랜드화가 이미 되었다. 나는 어느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훌륭한 성도라는 인식이 없다고 볼 수 있는가? 큰교회에 다는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고객이 되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게 예배만 드리는 것이다. 아니면 그런 큰 교회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잡지 못해서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일부이긴 하겠지만, 가나안 교인들이 교회에서 주도권을 잡았다면? 그들이 나왔을 것이라고 보는가? 나는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가나안 교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내 생각이며,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상관은 없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에 인터뷰가 제한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세번째는 그 결국 대안으로 회중교회를 제안하지만, 회중교회 역시도 한국내에서 문제점이 있다.
김교신의 무교회주의와 회중교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회중교회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하고 있지 않지만, 그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지금 미국내에서는 남침례교회가 회중교회인 곳이 많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중교회가 되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결국 뭉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왜 회중교회가 대표적이 되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한국 민족의 특성상 회중교회보다 장로교나 감리교 등의 교회들이 더 한국인의 특성에 맞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어도 한국내에서 회중교회는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네번째로, 가나안 성도 역시 그들의 책임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인터뷰를 보다보니, 교회에서 일을 많이해서 나갔다고 했다. 사실상 목회자는 더 많은 일을 한다. 또한 박봉이다. 목회자의 사례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생활이 가능할까 하는 교회들이 정말 많다. 일부 대형교회들이야 좋은 차 굴리고 좋은 음식 먹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성도들은 예배를 구경하기 위해 오고, 사역자들은 대부분 성경에 나온 것 처럼 말씀과 기도에 전심을 다하기가 어려워지는 환경이다. 회중교회처럼 일시키면 일이 많다고 떠나고, 에배만 드리면 기득권이 싫어서 떠나고. 결국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책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들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방법이, 대안이 없다고 해서 내버려 두고 있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이었다. 물론 지금은 유튜브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도 있긴하지만, 이들을 성도라고 하기에는 조금더 연구가 필요할 듯싶다.
결론적으로, 목회자도, 성도도, 교회도 모두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